이 책이 AI가 쓴 책이라면
이 책이 AI가 쓴 책이라면 아마 이렇게 시작했을 것입니다.
먼저 주장을 하나 세웁니다. 그 주장을 받쳐 줄 원리를 설명하고, 국제기구의 보고서와 대학 연구소의 논문을 가져옵니다. 일자리가 몇 퍼센트 바뀐다는 그래프를 그리고, 그래프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유를 붙입니다. 반대 의견도 몇 개 소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넘어가 다시 처음 주장으로 돌아옵니다. 깔끔하고, 빈틈이 적고, 반박하기 어려운 책이 됩니다.
지금은 그런 책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몇 마디 주제를 던지면 AI는 몇 분 안에 근거와 도표가 붙은 원고를 내놓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보고서도 제안서도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그 원고가 얼마나 그럴듯할지 저는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1. 증명하는 대신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책에서 저는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겪어 온 일, 지금 회사 안에서 보고 있는 일, 그리고 그 앞에서 제 직관이 말하는 것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AI 시대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은 이미 많습니다. 어떤 책은 낙관하고 어떤 책은 경고합니다. 대부분 숫자를 앞세웁니다. 저도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는 부모님들을 위해 책을 쓸 때는 국제기구와 대학, 한국 기관, AI 회사의 자료를 겹쳐 읽으며 근거를 따져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께는 걱정의 근거가 어디까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으니까요.
이번에는 질문이 다릅니다. 지능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는 아직 어떤 논문도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프는 지난 몇 년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지금 제 회사에서 매일 벌어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오지는 못합니다. 그래프가 그려질 때쯤이면 저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근거는 제 경험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무엇을 보았고, 그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입니다.
2. 이 책도 AI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먼저 밝혀 두겠습니다. 이 책도 AI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운전하면서 말로 풀었습니다. 차를 몰며 AI와 대화를 나누었고, AI가 묻는 질문에 답하다가 제가 하려던 말을 다시 찾기도 했습니다. 말로 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흐름을 잡고, 제가 말한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에도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문서 하나가 나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AI가 쓴 책이냐고 묻는다면, 손은 AI가 많이 보탰다고 답하겠습니다. 다만 무엇을 말할지는 제가 정했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AI가 내놓은 정리에 동의할 수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말하기도 했습니다. AI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 준 자리를 일부러 풀어 둔 곳도 있습니다. 저 스스로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정리된 것처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가 썼다면 했을 일 가운데 제가 하지 않기로 한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제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남의 숫자로 증명하려는 일입니다. 바깥 자료는 꼭 필요한 곳에만, 짧게 가져왔습니다. 제가 말한 사실이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제 전망이 어디까지가 전망인지 선을 긋는 데 썼습니다. 출처는 책 끝 '참고한 자료'에 모아 두었습니다.
3. 경험이 낡아지는 시대에 경험으로 쓴다는 것
경험으로 쓴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오래 쌓아 온 경험의 값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만들어 온 강의와 책과 노하우가, AI 앞에서 예전만큼의 무게를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흔들림을 가장 가까이에서 겪고 있는 것이 저입니다. 바깥에서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그 위기를 맞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만큼은 숫자보다 제 경험으로 하는 편이 정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더 일찍 시작한 사람이 당연히 더 잘할 것"이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 가다 보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도 숨기지 않고 남겨 두겠습니다. 생각이 바뀐 자리가 오히려 이 책에서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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