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대신 경험과 판단
AI의 미래를 다루는 글은 대개 예언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뒤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고, 어떤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저는 예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지금 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여 드리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제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하겠지만, 그것은 맞히려는 예언이 아니라 지금의 판단을 설명하기 위한 전망입니다.
이 절에서는 책이 어떤 길로 가는지, 그 길에서 제가 무엇을 약속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떠올리며 썼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다섯 장의 길
이 책은 다섯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장은 앞 장이 남긴 질문을 받아서 시작합니다.
1장 「우리 회사에서는 이미 미래가 시작되었다」에서는 저희 회사의 지금을 보여 드립니다. 저희는 한글 문서와 엑셀 문서를 다루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 AI와 연결해 쓰고, 보고서와 제안서와 이메일이 AI를 거쳐 나갑니다. 새 일을 맡아 꾸린 작업 팀(TF)이 사람을 더 붙여 달라는 대신 AI 구독료를 늘려 달라고 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저희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이 장은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일을 해내는 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2장 「지능을 구매하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는 그 질문에 답해 봅니다. 제가 보기에 남는 것은 실제로 해 본 경험입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해 본 것, 사람들이 쓰는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운영해 본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지식과 현실이 만나는 자리에서 생긴다는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3장 「모두가 부자가 되는 미래는 올까」는 시선을 회사 밖으로 넓힙니다. 한 사람이 훨씬 많은 일을 해내는 사회에서 그 풍요는 누구에게 가는가. 일론 머스크가 말한 보편적 고소득을 살펴보고, 좋은 시나리오와 좋지 않은 시나리오를 나란히 그려 봅니다. 그리고 제가 왜 보편적 고소득보다 '보편적 중위소득'에 가까운 미래를 더 현실적으로 보는지 말씀드립니다. 이 책에서 바깥 자료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장입니다.
4장 「먹고살 걱정이 없어도 우리는 배우고 일할까」에서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오래전 사회봉사단에서 ICT를 가르치다 마지막 수업 날 저를 붙잡은 한 학생,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던 창업의 이유입니다. 만드는 즐거움은 여전한데 그것이 생계와 남의 쓸모로 이어지는 연결은 약해진 지금, 교육회사로서 하고 있는 고민도 함께 꺼내 놓습니다.
5장 「내일의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 모든 질문을 저 자신에게 돌립니다. 내일의 AI가 오늘보다 더 잘 만들어 줄 것이라면,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에서 말씀드린, 이 책을 쓰다가 생각이 바뀐 자리가 바로 이 장에 있습니다.
2. 경험과 전망을 나눠 쓰겠습니다
이 책에는 네 종류의 문장이 섞여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 그 일에 대한 제 해석, 바깥에서 확인한 사실,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제 전망입니다.
이 넷은 무게가 다릅니다. 저희 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제가 책임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석은 저의 것이니 다르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바깥 사실은 출처를 달아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망은 틀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보고서와 제안서가 AI를 거쳐 나간다"는 문장은 경험입니다. 제가 매일 보는 일입니다. 그것을 보고 "앞으로 화이트칼라의 일은 대부분 AI가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망입니다. 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지만, 제 회사에서 본 장면이 그 말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두 문장은 비슷해 보여도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전망이 얼마나 쉽게 엇갈리는지는 이 원고를 정리하던 무렵 본 영상 하나가 잘 보여 주었습니다. AI 회사와 반도체 회사를 이끄는 사람들, 이름난 연구자와 경제학자들이 일자리의 미래를 두고 한 말을 모아 엮은 편집 영상이었습니다.[1] 같은 질문을 두고 누구는 일이 오히려 늘어난다고 했고, 누구는 큰 충격이 온다고 했고, 누구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끝난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람이 해가 바뀌며 다른 말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상에 실린 한 연구자는 몇 해 뒤는 꽤 짐작할 수 있어도 그보다 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며 저는 이 책이 가야 할 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의 전망도 이렇게 갈리고 바뀐다면, 제가 그 사이에 전망 하나를 더 보태며 맞히려 애쓰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제가 본 장면과, 그 장면 앞에서 내린 판단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네 종류의 문장이 섞이지 않도록 문장으로 구분하겠습니다. "제가 본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것은 제 전망입니다" 같은 말이 자주 나올 것입니다. 저희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산업 전체의 일처럼 부풀리지 않으려고 "저희 회사에서는"이라는 말도 여러 번 쓸 것입니다. 읽기에 조금 번거로우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경험으로 쓰는 책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깥 자료는 사람 이름과 날짜, 숫자처럼 확인이 필요한 곳에만 붙였습니다. 문장 끝의 번호를 따라가면 원래 자료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3. 확신하지 못한 것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약속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확신하지 못한 것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두겠습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여럿 있었습니다. 만드는 즐거움과 사업의 효용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하는지. 생계를 바꾸는 교육과 흥미를 키우는 교육 사이에서 교육회사는 어디에 서야 하는지.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할지. 저는 아직 이 질문들에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책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이 친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것을 정리된 것처럼 쓰면, 읽는 분은 제 판단 대신 제가 꾸민 확신을 가져가게 됩니다. 그것은 이 책이 하려는 일과 반대입니다. 그래서 풀리지 않은 긴장은 풀리지 않은 채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긴장을 어느 쪽으로 풀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판단하셔도 됩니다.
제 생각과 다른 자료나 다른 시각을 만나면 그것도 함께 놓겠습니다. 제 전망에 맞는 자료만 골라 오면 책은 더 단단해 보이겠지만, 그만큼 덜 정직해집니다. 경험으로 쓰는 책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부모의 질문에서 어른의 질문으로
지난 책 『AI 시대 자녀 진로,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는 밀리의 서재에서 많은 분이 읽어 주셨습니다. 그 책이 다룬 것은 부모의 질문이었습니다. AI 시대에 우리 아이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번 책의 질문은 방향이 다릅니다. 아이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된 우리 모두에게 향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묻다 보면 그 질문은 결국 묻는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오랫동안 익혀 온 것의 값이 흔들릴 때, 나는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
아이가 일터에 나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어른의 일은 지금 이 순간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질문은 조금 더 급하고, 조금 더 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5. 이 책이 다루지 않는 것
먼저 말씀드려야 실망하시는 분이 적을 것 같아, 이 책에 없는 것도 밝혀 둡니다.
이 책은 AI 도구를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닙니다. 어떤 지시문을 넣으면 결과가 좋아지는지,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도 그런 교재를 만들고 강의도 합니다. 다만 제가 겪어 보니 그런 요령은 수명이 짧았습니다. 새 버전이 나오면 애써 익힌 방법의 상당 부분이 AI 안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5장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앞으로 살아남을 직업의 순위나 안전한 직업의 목록도 없습니다. 대신 한 직업 안에서 어떤 일이 AI로 넘어가고 어떤 일이 사람에게 남는지를 나눠 보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반드시 취업이 되고 돈을 번다는 약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약속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6. 누구를 떠올리며 썼는가
이 책을 쓰면서 여러 자리에 계신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아이의 진로를 고민해 오신 부모님께는, 이번에는 아이 대신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시기를 권합니다. 새로 무언가를 배워야 할지, 배운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하는 성인 학습자께도 이 책이 닿기를 바랍니다.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이 AI에게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교실에 서 계신 선생님들, 저처럼 배움을 만들어 전하는 일로 사업을 해 오신 분들도 떠올렸습니다. 문서와 코드와 분석으로 일해 왔고, 그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 지식 노동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장은 앞 장의 질문을 이어받으니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그럼 저희 회사의 오늘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