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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필요성이다

제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즐거웠던 일은 위니브 스페이스를 만든 일입니다. 스페이스는 아바타로 걸어 다니며 수업과 회의를 하는 2D 공간입니다. 제주를 본뜬 섬이 있고, 그 섬에 강의실과 사무실뿐 아니라 미술관과 보드게임장이 서 있습니다.

위니브 스페이스의 광장 화면입니다. 위니브 프렌즈 캐릭터들이 안내원과 상인으로 서 있고, 오른쪽 위에 흑돌과 백돌 모양을 한 보드게임장 건물이 보입니다.

미술관에는 위니브의 공식 그림 61점이 걸려 있습니다. 회랑에는 프렌즈 인형 17점, 남관에는 계절마다 그려 온 포스터와 굿즈 20점, 제일 안쪽 북관에는 위니브 세계의 장면을 그린 이야기 일러스트 24점이 있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원화를 그대로 열어 볼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장에는 오목실과 체스실 옆에 위니브마블실이 있고, 위니브마블 판은 제주 지명으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는 위니브의 철학과 서사가 많이 녹아 있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무엇을 그려 왔고 어떤 이야기를 해 왔는지를 다시 떠올려서, 그것을 실제로 돌아가는 서비스로 지어 올리는 과정이 저에게는 기쁜 일이었습니다.

미술관 건물은 세 번 지었습니다. 처음 나온 창 없는 흰 상자는 AI가 임시로 고른 것이었고, 두 번째로 제가 고른 건물은 지어 놓고 보니 관공서처럼 읽혔습니다. 저는 더 예술적이고 감각적으로, 제주의 멋이 담기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닷가 돌담 원담을 본뜬 건물입니다. 현무암 벽 위로 지붕이 나선으로 감겨 둥근 마당을 두르고, 감긴 두 끝이 벌어진 틈이 입구입니다. 내부도 동그랗게 구성해 달라고 해서 평면을 다시 짰고, 전시실 셋을 일렬로 이은 첫 판은 되돌아오기 힘들어서 마당을 가운데 두는 구조로 바꿨습니다.

건물 모양이 관공서처럼 보이는지를 따진 시간은 어떤 업무도 줄여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실제로 프로젝트가 두세 개 열렸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모두의 AX 도구함 TF입니다. AI를 자기 일에 세팅해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를 제주에서 함께 메워 보자고 시작한 모임입니다. 참가비 없이, 공무원과 직장인, 교사, 학생이 자기 일에 쓸 스킬을 함께 만들어 누구나 가져다 쓰게 공개했습니다.

모두의 AX 도구함 TF 1기 모집 홍보 이미지입니다. 파란 배경에 'AI 업무 격차, 제주에서 먼저 메웁니다', '내 업무에 바로 쓰는 Claude Skill을 제주에서 함께 만듭니다'라고 적혀 있고, 오른쪽 아래에서 사자탈을 쓴 라이캣이 확성기를 들고 있습니다.

첫 모임은 2026년 9월 6일 저녁, 위니브 스페이스의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재밌어서 지은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 자기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1기가 끝날 때 참여자들이 만든 스킬이 다섯 개 나왔습니다. 학교 견적서로 품의 문서를 만드는 스킬, 평가계획을 한글 파일로 만드는 스킬처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때 내가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 기뻤습니다. 쓸모를 계산해서 지은 곳에 사람이 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기뻐서 지은 곳에 사람이 들어와 자기 일을 시작했습니다.

쓸 사람을 물으면 다들 유용성부터 떠올립니다. 시간을 얼마나 아끼는지, 돈이 되는지를 찾습니다. 저는 바이브 코딩을 유용성으로만 접근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재미로 시작해도 됩니다. 재미도 필요성입니다. 내가 재밌으니까 하는 것이고, 그것보다 분명한 이유는 많지 않습니다.

한칸도 그렇습니다. 아들이 적은 쪽지에는 바다를 어디에 둘지, 나뭇잎을 캐면 사과가 나와야 한다는 말은 있어도 이 게임이 어디에 쓸모 있는지는 한 줄도 없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만든 게임이니까요. 18일 동안 아무도 파일을 남기지 않은 노트북 서버는 시험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한칸은 시험보다 놀고 싶은 아이가 먼저 있었고, 해 보고 다시 적은 쪽지가 다음 할 일이 됐습니다.

재미를 아는 사람은 기획을 합니다. 한칸의 기획자는 아들입니다. 그 기획을 정리한 문서에는 친구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좌절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친구가 지은 집을 캐서 가져가는 일이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싸움이라고 적혀 있고, 그래서 누군가 집을 부수면 그 사람의 최근 편집을 되돌리는 기능이 들어갔습니다. AI는 블록 게임을 잘 만듭니다. 친구가 지은 집이 부서진 날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나는지는 모릅니다. 미술관을 어떤 모양으로 지어야 위니브다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획의 두 번째 질문은 내 쪽을 향합니다. 나는 무엇을 재밌어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만드는 값이 0에 가까워지면 이 질문을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재미로 만들기엔 비쌌던 것들을 이제 만들 수 있습니다. 쓸모를 설명하지 못해도 만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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