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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아니라 일로 나누기

메일을 읽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안내문을 고치다 보면 하루가 끝납니다. 5장에서 AI가 답을 만드는 방식과 도구를 고르는 기준을 알아봤으니, 이제 그 하루에서 무엇을 맡길지 찾아보겠습니다. 직업 이름을 내려놓고 오늘 한 행동을 적으면, 막연했던 AI 활용이 구체적인 일이 됩니다.

1. 직함 옆에 동사를 씁니다

“행정 업무를 합니다”라는 설명만으로는 AI에게 일을 주기 어렵습니다. 같은 행정 업무라도 신청서를 모으는 일, 빠진 항목을 찾는 일, 예산을 조정하는 일은 필요한 자료와 책임이 다릅니다. “이 직업을 AI가 할 수 있을까”를 묻기 전에,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살펴봅니다.

이를 위해 일을 결과물이 나오는 작은 단위인 과업으로 나눕니다. “행사 운영”을 “신청 내용을 표로 정리하기”, “문의 유형을 묶기”, “참가 안내문 만들기”, “장소 변경 여부 결정하기”로 바꾸는 식입니다. 읽기, 찾기, 비교하기, 만들기, 결정하기처럼 동사로 끝내면 맡길 대상이 보입니다.

한 직업 안에도 맡기기 좋은 일과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섞여 있습니다. 가령 안내문에서 날짜가 서로 다른 곳을 찾는 일과, 어떤 날짜로 행사를 옮길지 정하는 일은 다릅니다. 앞의 일에는 비교할 자료를 주면 되고, 뒤의 일에는 참가자 사정과 장소 계약, 변경에 따른 책임까지 따라옵니다.

AI가 내 직업을 얼마나 대신할지 먼저 예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다시 할 과업 가운데 하나를 골라 보면 됩니다. 그 과업을 맡긴 뒤에도 내 일은 이어집니다. 돌아온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가 활용의 출발점입니다.

많은 조직이 이미 AI를 쓰고 있습니다. McKinsey의 2025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8%가 자기 조직이 한 가지 이상 업무 기능에서 AI를 정기적으로 쓴다고 답했습니다. 2026년 8월 공개한 후속 조사에서도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조직 전체로 넓혀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응답은 44%였습니다. 한두 업무에서 써 보는 것과 일하는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것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거리를 좁히는 출발점이 과업 단위로 나눠 보는 일입니다.

McKinsey 2026년 조사의 첫 그림입니다. 한 가지 이상 업무 기능에서 AI를 쓰는 조직의 비율이 2023년 이후 크게 늘었고, 오른쪽 막대는 그중 시험·시범·확장 단계의 비율을 보여 줍니다.

2. 하루를 적으면 반복이 보입니다

기억에 의존해 “중요한 업무”만 적으면 회의나 큰 프로젝트 이름이 남습니다. 정작 자주 하는 복사, 분류, 비교는 빠지기 쉽습니다. 하루 동안 일을 마칠 때마다 짧게 적어 보세요. 무슨 자료를 받아 어떤 결과를 냈는지 남기면 충분합니다.

아래는 가상의 교육 행사 담당자가 적은 기록입니다. 실제 회사나 참가자 자료가 아닙니다.

하루에 한 일받은 재료만든 결과다음에 쓰는 곳
문의를 종류별로 묶기가상의 문의 문장일정·준비물·환불 분류표답변 담당자 배정
안내문에서 다른 날짜 찾기안내문 두 판날짜가 다른 부분 목록최종 안내문 수정
회의 내용을 할 일로 바꾸기가상의 회의 메모할 일·담당·기한 표다음 회의 준비
홍보 문구 만들기공개 행사 소개게시물 초안게시 여부 결정
장소 변경 여부 정하기조건별 장단점결정과 그 이유참가자에게 공지

이 표를 보면 같은 “행사 운영”도 서로 다른 일을 묶은 이름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문의 분류를 맡기려면 분류 기준이 필요하고, 날짜 비교를 맡기려면 비교할 두 판이 필요합니다. 장소 변경은 선택지를 비교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 결정은 담당자가 내려야 합니다.

시간도 대략 적어 두면 좋습니다. 정밀하게 초를 재기보다, 자주 끊기는 일인지 오래 붙잡고 있는 일인지 구분해 봅니다. 오래 걸리는 일만 후보로 삼으면 하루에도 여러 번 되풀이하는 작은 일을 놓칩니다. 짧은 과업이라도 반복이 많고 결과를 확인하기 쉽다면 먼저 해 볼 만합니다.

학생이라면 “과제하기”를 자료 찾기, 출처 비교, 글의 구조 잡기, 문장 고치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게를 운영한다면 “홍보하기”를 메뉴 설명 정리, 게시물 초안 만들기, 가격 확인, 게시하기로 나눠 봅니다. 자기 일에서 실제로 쓰는 말로 적어야 나중에 지시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3. 재료와 결과를 함께 적습니다

“보고서 쓰기”가 여전히 너무 크다면 재료와 결과를 더 구체적으로 적어 봅니다. “지난주 가상의 판매표를 받아 품목별 합계와 증감 이유를 구분한 표를 만든다” 정도가 되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합계는 표에서 계산할 수 있지만, 증감 이유는 별도 자료가 없으면 알 수 없다는 점도 드러납니다.

이때 AI가 모르는 내용을 추측으로 채우지 않게 해야 합니다. 판매가 줄었다는 숫자와, 날씨 때문에 줄었다는 설명은 다른 정보입니다. 숫자만 줬다면 원인을 확정하지 않고 “확인할 가설”로 남기는 것이 맞습니다. 과업을 나누는 과정은 필요한 자료와 부족한 자료를 가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결과의 모양도 정합니다. “보기 좋게 정리”보다 “결정 사항, 아직 정하지 않은 것, 다음에 할 일을 나눠 표로 정리”가 확인하기 쉽습니다. 어떤 열이 있어야 하는지, 원문에 없는 담당자나 기한은 어떻게 표시할지까지 정해 두면 결과를 다음 업무에 바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행사 운영을 작은 과업으로 나누면 과업마다 필요한 재료와 완성할 결과가 보입니다.

그림의 마지막 줄에 있는 결정 과업에도 AI가 도울 부분은 있습니다. 장소 후보를 비교하거나, 빠진 조건을 찾거나, 변경 시 알려야 할 대상을 정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선택지를 만드는 일과 선택을 확정하는 일을 구분해 기록합니다. 그래야 AI에게 준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습니다.

4. 첫 후보는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일

너무 작게 나누면 오히려 옮기는 일이 늘어납니다. 문장마다 별도 대화를 열어 수정한 뒤 다시 합친다면, 사람이 앞뒤를 맞추는 시간이 더 들 수 있습니다. 같은 재료로 이어지는 일은 한 덩어리로 묶어도 됩니다. 문의를 분류하고 유형별 답변 초안을 만드는 정도는 함께 맡길 후보가 됩니다.

처음에는 결과를 보관할 곳과 사용할 사람도 적어 봅니다. 회의에서 바로 볼 표인지, 나만 읽을 메모인지, 고객에게 보낼 초안인지에 따라 통과 기준이 달라집니다. 내 메모는 고치면 되지만, 고객에게 보낼 문장은 발송 전에 별도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목록을 모두 만들었다고 한꺼번에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재료가 준비돼 있고, 다음에 또 하며, 결과를 써 볼 자리가 있는 과업 하나를 고릅니다. 그 한 건을 맡겨 보면서 준비와 확인까지 포함한 시간을 기록해 두면, 다음 후보를 고를 근거가 생깁니다.

5. 따라 해 보기

아래 지시를 새 대화에 그대로 붙여 넣습니다. 지금은 실제 일정이나 고객 정보를 더하지 말고, 들어 있는 가상의 하루만 나눠 보세요. 내가 미처 구분하지 못했던 행동을 AI가 찾아내는지 살펴봅니다.

아래는 가상의 지역 문화센터 담당자가 보낸 하루입니다.
실제 인물·회사·참가자 정보는 없습니다.

[가상의 하루]
아침에 행사 문의 문장 12개를 읽었다.
문의는 준비물, 일정, 환불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존 행사 소개문을 짧게 고쳐 게시물 초안을 만들었다.
안내문 두 판에서 날짜와 장소가 다른 곳을 찾았다.
회의 메모를 읽고 다음 주에 할 일을 정리했다.
비 예보에 대비해 야외 행사를 옮길지 논의했다.

1. 이 하루를 결과물이 나오는 작은 과업으로 나눠 줘.
2. 표의 열은 과업, 필요한 재료, 결과물, 완료 기준,
   AI가 도울 부분, 사람이 결정할 부분으로 해 줘.
3. 실제 자료가 없어서 수행할 수 없는 일은 재료 부족으로 표시해 줘.
4. 날짜·장소·환불 규정·회의 결론을 지어내지 마.
5. 처음 시험해 볼 과업 하나를 고르고 선택 이유를 적어 줘.
   이 대화에서는 과업을 나누기만 하고 발송·게시·결제는 하지 마.

이런 답이 오면 잘된 것: 안내문 비교와 행사 이동 결정을 나누고, 비교할 원문이 없다는 점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오면 이렇게 다시 말하기: 행사 장소나 환불 규정을 만들어 냈다면 “없는 자료는 채우지 말고, 필요한 자료 이름만 적어 줘”라고 말합니다.

표를 받은 뒤에는 “행사 운영” 같은 큰 이름이 남아 있는지 봅니다. 반대로 단어 하나 고치기처럼 지나치게 잘게 나눈 줄은 앞뒤 과업과 합쳐도 됩니다. 다음 절에서는 이 목록에서 무엇을 맡기고 어디에 결정권을 남길지 고르겠습니다.

참고 자료